프리다칼로(1907~1954)
멕시코 여류화가
19살에 약혼자와 버스를 탔던 소녀는 양산을 두고 온 것을 생각하고
바로 차에서 내렸고 결국 다음 버스를 탔다가 열차와 충동했다.
남자친구는 무사했지만 프리다는 끔찍한 외상을 입었다.
가족들은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위해 이젤과 거울을 준비해 주었고
자신의 자화상을 처음 그리게 된다.
" 내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종종 나는 혼자이며,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
프리다 칼로는 연인 '디에고'를 항상 아이처럼 안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품에 디에고가 안겨있고,
프리다 칼로는 지구 여신의 품에 안겨있고,
또 지구여신은 우주 주재자의 품에 안겨있다.
그리고 태양과 달이 비추고 있다.
빛과 어둠의 큰 그림안에 태양과 달이 비추이고,
그 안에 지구여신의 분신인 여인.
그리고 그녀를 통해 탄생한 남자가 있다.
프리다 칼로는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멕시코의 유명 벽화화가 디에고 리베라 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여성편력이 심하고,
이미 결혼을 두번이나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였지만,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주었던 리베라를 사랑하게 된 프리다.
칼로는 22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21살 많은 리베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생활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프리다는 리베라의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다친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프리다는 반복되는 유산으로 절망해야만 했다.
게다가 리베라의 여성편력은 끊이질 않았고, 급기야 프리다의
여동생과 만나기까지 하여 프리다는 이 둘에게 큰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크리스티나는 칼로의 여동생으로 남편과 살림을 차린다.
리베라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표현한 그림.
<다친 사슴 1946>
수 많은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다친 사슴 모습속의 프리다 칼로.
상처 투성이인 몸에 비해 얼굴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
헨리포드 병원 작품은 유산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놓지 못하는 붉은 실. 미련. 그녀의 절망과 슬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기괴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육체적 상처보다 아픈건 마음의 상처이다.
리베라와는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함께 살게 된다.
(프리다는 리베라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였기 때문에..)
위 작품 속 프리다는 척추의 고통이 마치 수 십개의 못에 찔리는 듯하다라고 말하는 듯 한다.
작은 언덕 위에 작은 집과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가
외롭고 고독한 그녀의 마음을 표현하는듯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온 고통을 예술로 승화 시켰다.
프리다의 작품들을 보면서 여자로써 참 많이 가슴이 아팠고,
현 시대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녀를 보며 영감을 받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을 위대한,존경할만한 인물이라는걸 새삼 다시 깨닫을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을 알고,그녀를 이해하고 나면
그녀의 모든 작품의 느낌들을 이해하며,마음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예술의 대한 열정.
한 여자로써, 존경하는 예술인으로써.
그녀의 작품속에는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녀의 아픔과, 그녀의 상처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모두 담겨있다.
그녀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녀 바로 자신이고,
그녀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가 50 이 안된 나이에
자신이 더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때
그녀는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버스사고로 척추 수술을 여러번 받고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녀가 정작 아팠던것은 육체보다 사랑으로 찢긴 마음이였다.
그녀는 죽음을 감지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자신에게 찾아 든 죽음의 저승사자는 침대위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불에 타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지구 어머니 품속으로.
" 나의 평생 소원은 단 세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
프리다 칼로
일기의 마지막에는
'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이라고 쓰여있다.
페미니즘운동의 한 축이 된 칼로.
끝까지 한 사람을 생각했고 한 사람만을 바라보았는데
그 사랑은 실패했다고 할 순 없지만 그녀는 외로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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